[30 Nov 2005] [퍼온글] 그들만의 사랑..

2005. 11. 30. 08:33Thought

출처: http://blog.naver.com/donodonsu/100019974994

내가 자주 (솔직히 매일) 방문하는 사이트 중에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음악, 미술 및 인생 등에 관한 글을 쓰는 블로거의 블로그가 있다. 특히 "인생"이라는 카테고리의 글을 즐겨 읽곤 하는데, 이 카테고리는 직업이 의사인 블로그 주인이 병원을 중심으로 하여 만난 사람들의 "인생"을 소개하는 곳으로, 많은 글들이 우리네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오늘 아침, 출근하여 들른 이 블로그에서 읽었던 글을 소개한다. 제목은 "그들만의 사랑.."

 

---------------------------------------------------------------------------------

 

정규씨는 농아자다.

내가 시각이나 청각 장애자분들을 만날 때마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맑다"는 것 이다,

이것은 물론 세속적 관점에서 "착하다" 혹은 "순하다"라는 느낌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착하다" 와 "순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이해관계에 대해 어느정도 손해를 감수한다거나, 혹은 위해한 자극이 주어질 때  이에대한 반응강도가 낮다는 의미와도 같은 것이지만, 이분들이 맑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것과는 좀 다르다

이분들은 기본적으로 "이해" 나 "타산"에 대해 우리네 일반인들과 관점이 다르다.

예를들어 회사에서 월급을 받았을 때,  내 급여가 다른사람들보다 적다면 누구나 그점에 대해 화를 내게 되는데, 만약 누군가가 그것을 참는다면 그사람은 착하거나 아니면 턱없이 순한 사람이다. 혹은 동료들이 술자리가 있을 때마다 매번 한사람에게만 술값을 내게 한다면 역시 그 사람은 턱없이 순하거나 아니면 착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만약 누군가가 같은일을 하면서도 급여를 적게 받고, 그나마 그 적은 급여를 받은 것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한다면, "우리가 그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나쁜점이나, 혹은 이사람에 대해서 `바보`라는 보편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한" 그 사람은 "맑다".

정규씨가 그랬다.

정규씨는 농아자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맑다". 필자가 지금 "그래서 맑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정규씨가 우리 정상인들처럼 "말"로 이루어진 죄를 짓지 않아서 맑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어란 개념이고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음모나 욕심,증오나 분노도 모두 언어로 구성되고, 또 그것은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 그 말은 다시 다른 말을 부르고 그것은 내안에 욕심의 덩어리로 다시 또아리를 틀게된다.

내가 아는 한 정규씨 같은 분이 "맑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다.

정규씨는 병원에 올 때도 70 노인인 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오신다. 그는 나이가 내 또래임에도 욕심이 없다, 그렇다고 지능이 특별히 낮은것도 아닌데 우리 정상인들 기준으로 보면 약간 바보스러운데가 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데가 있다 )  

그것은 아마 어릴때부터 밀림에서 원숭이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처럼 우리 사회의 세속적인 개념들을 잘 익히지 못해서 일 것이다. 그는 3000원 병원비를 낼 때도 만원짜리를 낸다. 그리고는 거스럼돈은 주면 받고 안주면 그냥 "씨익" 웃고 만다, 그는 버스를 탈 때도 짜장면을 먹을때도 그렇게 하고, 아마 모르긴해도 껌을 한통 사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지능이 낮아서 그런것 같지만, 의사인 내가 판단하기에 그것은 절대 아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사회를 영악하게 사는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께 정규씨와 노모가 손을 잡고 같이 병원에 오셨다.

나는 정규씨의 손을 보면 마음이 편치않다, 그의 손은 늘 거칠고 손등은 늘 거북이 등가죽 처럼 갈라진데다, 손바닥은 항상 벌겋게 부어있다. 주물공장에서 일하는 정규씨는 동료들이 꺼리는 일을 도맡아 한다. 녹을 벗기는 독한 화공약품과 녹물이 뚝뚝 떨어지는 낡은 고철을 만지는게 그의 일이다보니 그의 손은 하루도 습진으로부터 성할 날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열이 39도가 넘어 온몸이 펄펄 끓는날에도 새벽부터 회사에 나가서 하루종일 일을 한다. 그것이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가 받는 급여는 다른 사람들 보다 반이나 적은데 그것은 그가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월급날이되면 동료들과 회식을 나가서 혼자서 술값과 밥값을 다 치르느라 월급의 1/3 은 써버린다. 그것은 또 동료들이 월급날만되면 정규씨를 데리고가서 회식을 한 다음 정규씨에게 계산을 미뤄버리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하면서 마흔이넘은 아들의 손을 잡고 독감예방주사를 맞히러 온 노모가 눈물을 훔쳤다.

그나마 노모는 올해 초에 위암 3기 진단을 받고 위를 2/3 이나 잘라냈었다, 정규씨는 회식자리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을 때면 여윌대로 여윈 노모를 생각했고, 그나마 남은 월급으로 매번 소꼬리를 사들고 왔다. 노모는 그런 정규씨를 부여잡고 가슴을 쳤다.

그래서 지난달 부터는 월급날이 되면 회사에 직접가서 아들을 데리고 온다고 하신다. 

정규씨도 안다,

그는 어머니가 이제 얼마 사시지 못하는 것도 알고, 앞으로는 지난 40 여년과는 달리 혼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안다, 또 그나마 나이가 들면 지금하는 일자리마져도 없어질 것도 알고, 지금 동료직원들이나 회사에 밉보이면 회사에 오래 다니지 못할 것도 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몸이 부숴져라 일하고 동료들이 밥을 사라면 밥을 사고, 약품을 옮기라면 옮기고, 쇳가루를 안고 다니라면 그렇게 한다,

노모는 남겨질 정규씨를 걱정하지만, 사실 정규씨는 혹시라도 자기가 노모를 부양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한다,

노모는 정규씨가 속없이 돈을 쓰고 온다고 가슴 아파하고, 자기가 죽으면 세상에 혼자 던져질 정규씨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지만, 정규씨는 자기가 일을해야 노모가 치료도 받고, 보약도 먹고 그나마 좀 더 사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마치 밤에 노적가리를 옮기는 동화속의 형제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산다, 그런 그들을 이용하고, 덤터기를 씌우려는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면서도 그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던 방식으로 그렇게 살아간다,

때로는 바보처럼, 때로는 천사처럼, 누가 뭐라고 해도 그저 늘 그렇게 입에 귀에 걸린 큰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2005/11/28 시골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