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May 2001] 자연의 항상성.

2004. 6. 2. 13:35Thought

1년이 조금 넘게 운전병을 하다보니, 자연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매 순간순간마다 자연의 그 항상성에 놀라게 된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모습. 진정 내가 가지고 싶은, 갈망하는 모습이다. 내가 그러지 못해서인가.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가까이 다가옴을 알려주는 첫 변화는 아쉽게도 황사다. 3월 초부터 황사가 시작되는 것. 그 양에 변화는 있지만 5월 초순까지 황사는 계속된다. 황사가 시작되면서 진달래, 이어 철쭉이 꽃을 피운다. 진달래꽃과 철쭉꽃은 그 모습이 거의 비슷한데,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 것이 진달래, 초록빛 잎이 돋아난 후에 꽃을 피우는 것이 철쭉이다.

4월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은 송화가루(소나무 꽃가루). 온통 세상을 노란 가루로 뒤덮는다. 덕분에 운전병들은 차를 닦느라고 온 시간을 다 소비하게 된다. 이곳이 산기슭이어서 그런지 더욱 심한데, 먼지털이개로 닦은지 1~2분만 지나면 언제 닦았냐는 듯이 차가 노랗게 변해버린다. 노란 송화가루와 함께 피어나는 노란색 개나리도 4월의 알림이. 개나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중의 하나. 대학 새내기때인 95년 봄, 우리학교(서울대) 정문에서 봉천사거리쪽의 길가의 그 빼곡한 노란 개나리에 정신을 빼앗긴 후부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젠 새로운 건물을 짓느라 그 개나리들이 다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운전병들을 괴롭히는 송화가루는 4월 말까지 계속된다.

5월이 왔음을 알려주는 것은, 주위에서 은은하게 찰랑거리는 아카시아 향기와 벌. 4월 하순부터 벌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다가 5월에 들어서면 아카시아 향이 공기속에 녹아든다. 더운 여름날에 이런 진한 아카시아 향이 사방에서 진동한다면 더욱 무덥게만 느껴질테지만, 따사로운 햇살사이를 가끔씩 선선한 바람이 소요하는 봄날의 은은한 아카시아 향내는, 마음까지 맑게 정화시킨다. 아카시아 향은 5월하순에 접어들어 점점 사그라 지다가 6월의 문턱에서 사라진다.

6월 이후로는.. 확실히는 모르겠다. ^^

작년에 운전병으로서 일년을 보냈지만, 계급도 낮고 처음 겪는 일이라서 모든 것이 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올해 같은 일들을 반복하게 되면서, '아, 그렇구나'하고 느끼게 되는 것.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을 하면서 6월 이후의 자연에 대해서도 정리해볼 생각이다.

언제나 변함없는 그 모습 그대로의 믿음직한 자연을 보면, 정말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한 자연을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