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Jun 2001]나는 그 고단한 '노동자'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싫다.

2004. 6. 3. 12:52Thought

<친동생 기석이가 쓴 글><나의 답글>

처음 개장(?)했을땐 여러사람들의 문안인사로 꽤나 시끌벅적했던 것 같은데.. 이젠 마치 강원도 시골의 산골분교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 이렇게 말하면 홈피 주인이 우울해할려나? 하지만 대부분의 모든 개인홈피들이 겪는 일반적인 현상이니 너무 기분상해하지 말것.-

내 인생의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내 얼굴에 예전엔 없었던 기미만 잔뜩 선물해준 채 나의 뭐같은 군생활도 이렇게 끝났고 지금은 하루하루 살찌는게 느껴지는 백수의 생활이다.

어젠 '참을 수 없는 내 몸의 무거움'을 떨쳐버리고저 학원엘 갔다가 버스를 타고 종로서적에 가서 가벼운 Toefl책을 하나 사고.. 캐나다와 미국 여행안내 책자를 하나 사볼까 뒤적여 보았다.. 두 나라를 하나로 '북미'이런 식으로 묵어놓은 책이 없고 따로따로 나뉘어져 있길래 그냥 사지않고 학교로 갔다..

'외로운 고시생'범진군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울과 96 지지배들과 93~94 선배형들의 소식을 들었는데.. 참............ 누구는 어느직장엘 가고 누구는 어느대학원에 가고 등등....

대부분 현대해상, 삼성화재, 국민은행, 장기신용은행, LG정유, LG화학, 다음커뮤니케이션, 호텔신라.. 등등.. 일반회사에 취직해 '미스터김' '미스리'로 불리우며 회사와 조국에 충성을 다하는 부속품이 되어있더군. 그들도 머지 않아 불혹을 조금 넘은 나이에 혹자는 돈을 좀 모았다면 전자대리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혹자는 학교앞 '문일분식'에서 튀김을 튀기고 있을지도 모르며.. 예쁘장한 외모로 사회학과 남학우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여학우는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보험아줌마'가 되어 어색한 웃음 한가득 머금고 우리집엘 찾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96에 최의선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1년 휴학을 하고 올해 2월에 졸업을 했다. 꽤 괜찮은 외모의 소유자로 항상 여러 남자들과 연애에 열을 올리던 그 학우.. 그런데 그 학우는 '개인사정'으로 취업준비 (뭐.. 토익점수 올리고 컴퓨터 자격증 한두개 따는 거였겠지만)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취업준비를 못했다"는 낯뜨거운 변명이 더욱 우스꽝스럽고 처량하게 들렸는데 이번에 미국 CITI BANK에 들어갔다네.. 다들 외국계 최고 우량기업인 씨티뱅크에 입사한 의선양의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그녀의 안일했던 과거를 생각하면 당연했을...) 알고보니.... 그녀의 보직은.. 오늘은 의정부.. 내일은 용인... 모레는 당산동.. 떠돌며 하루에 할당된 씨티카드를 세일즈해야 하는 거란다.

범진군 왈.. "의선이도 고등학교때 지네학교에서 맨날 1등이었대."..... 범진이도 나도 그 의선양도.. 또 많은 내 동기들도... 중고등학교때 반에서 1등은 너무나도 당연한 거였다. 3반 1등인 정훈이가 나보다 잘했을까.. 이번에 전체4등밖으로 밀려나면 안되는데.. 하던 시절이 누구나 다 있었는데... 요새 우리의 고민은 우리도 의선양처럼 되면 안되는데.. 하는 처량한 위기감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항상 동네아줌마들이나 학교선생님들한테 띄어줌을 받던 사춘기 시절이나, '고려대'다닌다는 말에 번개하자며 달라붙던 싸이버상의 여자들의 모습에... 명예퇴직당한 40대의 축쳐진 이시대의 아버지들과 거리의 카드 세일즈맨,우먼들의 깝깝해보이는 앞날을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생존의 위기감으로 길바닥에 웃통을 벗어젓힌채 드러누워 전경이들에게 개처럼 끌려가던 '노동자'의 모습을 나보다 열등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처절한 몸부림쯤으로 불쌍하게 치부해버리던 내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러한 처절한 현실의 구덩이 그 바로 앞에서 서서히 허리까지 빠져들고 있는 내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빠져나오려고 허둥대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확연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재벌가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나는 노동자계급이었음을 지금까지 부정하고 싶었던게다.

내 지푸라기는 어디에 있을까?


<나의 답글>

우선... 멋진 글이구나. ^_^

내 대학 1학년 새내기 때 과선배(93 정연채, 92 박종필 선배 등)들이 하는 말 중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우리는 과학 노동자입니다.'하는 말이었다. 서울대생이 노동자? 그만큼 반감도 컸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들이 하고자 했던 말이 지금 너나 내가 느끼는 그런 의미일런지는 모르겠다만 난 그당시 특권의식이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가지고 있었고 그만큼 반감을 느꼈던 것 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올해 초 대우자동차 노조의 파업을 공권력을 투입해 막아버리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있었다. TV를 통해 그 파문의 끝자락을 볼 수 있었는데, 웃통을 벗은 노조원이 전경에 대해 강력히 저항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처장님께서 웃으시면서 '저런 사람은 없어져야 해'하고 말씀하셨는데, 그때의 그 미묘한 기분이란. 물론 난 그당시 노조원들의 집회, 파업들이 당연히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집단 전체로 본다면 그 집단에게 해가 됬으면 해가 되지 득이 되진 않을 것. 처장님께서도 단순히 그런 의미로만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하다. 하지만 내가, 처장님이 그 집단의 정리해고자 명단에 올라가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순순히 받아들였을까? 나는 과연 그들처럼 웃통을 벗고 저항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저들과 똑같이 행동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과연 우리의 지푸라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찾기 위해 범진이는 CPA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이고 넌 어학연수와 대학원 진학을, 다른 몇몇은 취직을 하려 하는 것이겠지. 나 또한 그 점에서 너희들, 다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고.

언젠가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진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젊고, 여러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좀더 흘러 사회적 위치가 정해져 버리면 더이상 진로를 고민할 수 없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단지 안정적으로 유지하길 바랄 뿐이기 때문에.'

다행이도 너에겐 아직 몇가닥의 지푸라기가 남아있다. 어떤 지푸라기를 잡을 것인가, 그것이 중요한 것. 네가 선택을 했다면, 그것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에 대한 가치 평가는 나중에 세월이 흐른 뒤에나 가능한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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