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Jul 2001] 견훤? 왕권? 궁예?
2004. 6. 3. 13:12ㆍThought
<내 글>과 <친동생 기석이의 답글>
'태조왕건'이라는 사극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난 볼 기회가 몇번 없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어제 저녁, 그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을 때, 처장님께서 갑자기 내게 질문을 하셨다.
'저 드라마는 견훤, 왕건, 궁예, 이 세사람의 정치적 지도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거 아냐? 물론 왕건이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니 앞으로의 극 전개야 왕건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되겠지만, 박기원이는 그 세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느닷없고 뜽금없는 질문이라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난 그 드라마를 잘 보지 않기에 '제가 저 프로그램을 잘 보질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하고 말했더니 처장님께서 실망하셨다는 듯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후 어쩔 수 없이 근 한달여 전에 신문에서 잠시 읽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대강 머리를 짜내어 다시 말을 이었다.
좌로부터 왕건, 견훤, 궁예
'듣기로는 인재의 등용에 있어 세사람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들었습니다. 자신의 부하가 실수를 했을 때 견훤은 가차없이 처단하고, 궁예는 두세번의 기회를 주어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을 때에는 더이상 돌아보지 않지만, 왕건은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라면 항상 용서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견훤의 그러한 자세도 문제이지만 왕건의 자세 역시 옳은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라 하더라도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한다면 그것이 몸에 베어 언젠가는 결국 대사를 그르칠 수 있을 것이고, 주위를 잘 찾아보면 그보다 훌륭한 인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니, 어느정도만 용서해주는 궁예의 지도스타일이 제일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말 찐땀나게 대답했다, 그 드라마 내용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니까. 처장님께서는 말을 이으셨다.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해서야. 견훤이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지, 그리고 솔선수범해서 어렵고 힘든 일도 밑의 사람들과 직접 같이 하고. 그런 자세는 밑의 사람들의 믿음을 받을 수도 있고 좋은 자세이지만, 작은 집단의 리더가 되기에 적당할 수는 있어도 국가같은 큰 집단의 통치자로서는 좋지는 못하지. 그런 지도자로는 궁예같은 사람이 좋은 것 같아. '북벌'같은 '비전'을 밑의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집단을 이끌어가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물론 궁예야 옳지 못한 일들을 하기도 해서 중도하차하게 되지만...'
'... 왕건은 뭐라그럴까 시류에 잘 영합한다고 할까 그런 사람이지.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주위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읽고 그에 편승하는, 어찌 보면 좀 얄미운 그런 사람이야. 왕이 되는 것도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서야 전면에 나서는.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보면 그런 사람이 오히려 성공을 하는 것 같아. 나당 연합군을 만들어 삼국을 통일한 신라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면 말이야.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 그래서 그런걸까?'
처장님을 말씀. 생각할 수록 옳은 말인 것 같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주위에 주행하는 차가 있나없나 잘 살펴보고 신호를 위반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버리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대접받고, 잘 사는 것 같다.
(좌) 1948년 초대대통령 취임식 중 이승만 (우) 백범 김구
대학 1학년 때 '한국 근대사'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의 젊은 강사가 '김구는 정치가가 아닙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이상하게도 기억이 났다. 맞다, 김구는 정치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독립된 한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승만은 정치가였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왕건 같은, 정세를 잘 읽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류에 영합하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과 그 후손들이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꼿꼿한, 그러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반면 친일파들이 여전히 영화를 누리는 것도 그러한 일면이 아닐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정답이 무언지 알더라도, 정말 힘든 문제다.
<친동생 기석이의 답글>
틀렸어.
형은 신라 창시자 박혁거세의 69세손으로서, 신라의 55대 왕인 경애왕에게 쓰러져가는 제국의 왕위를 넘겨준 54대 경명왕의 40세 손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어.
장군이 그런식의 질문을 했을때.. "처장님은 왜 동시대의 삼한의 한 제국이었던 신라의 경애왕은 제껴놓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TV프로그램에 얼굴을 잘 들어내지 않았다하여 신흥 강성대국 백제와 태봉에 맞서 쓰러져가는 왕국을 복흥시키려 애썼던 경애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잘나가는 시절의 제국의 왕보다 허물어져가는 혼돈속의 제국을 넘겨받아 다스려야 했던 경애왕의 통치능력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라고.. 캬캬.. 그렇게 말했다면 한대 맞았겠지?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어진다. 이에 왕건은 위대한 대제국의 건설자로 궁예는 미치광이로.. 견훤은 이성이 부족한 불같은 감성주의자로 묘사되는.. 그리고 경애왕은 타락한 신라제국의 통치권의 대표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TV프로그램 또한 역사서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대본으로 제작되니....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왕건은 우리가 만주벌판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길을 놓쳐버린.. 그래서 이 코딱지만한 반도에 웅크리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겨우 함경도 북쪽에 천리장성이나 쌓고 주저앉아버린... 그렇지만 어느 역사서에도 왕건을 실패한 개척자라 묘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애왕과 왕비의 죽음도.. 참 비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야땅을 넘어 금성(경주)로 진격해오고 있는 와중에도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워놓고 흐느적거리며 놀다가 견훤의 발앞에 무릅을 꿇고.. 왕비는 견훤과 그의 군사들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던데......
타락한 신라왕가의 대표적 장소로 꼽히는 '포석정'이란 곳은 신라의 남산(신라를 지켜주는 산신이 살던 경주의 산)을 향하여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적이 침공했을때 왕과 왕비가 친히 나아가 남산의 주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라 한다.. 중국에도 '포석정'과 똑같이 생긴 제단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 즉.. 후백제의 군사들이 가야산을 넘어 들개떼처럼 몰려들고 있을때.. 경애왕은 흐느적거리며 포석정에서 가야금 뜯으며 술을 퍼먹고 있던 것이 아니라.. 제국의 마지막 운명을 손바닥으로라도 막아보고자 포석정을 찾아 경주 남산신에게 눈물로 제를 올리고 있다 침략자 견훤의 칼에 부인과 함께 산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내 현존 유명 사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며 KBS 역사스페셜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졌음)
역사서엔 이 왜곡된 기술로 경애왕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한 왕으로,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은 신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넘겨주고 고려로 투항해버린 비굴한 인간으로, 견훤은 이성적 판단이 부족한, 한 제국의 왕비까지 욕을보인 지저분한 인간으로.. 궁예는 일찌감치 똘아이 취급을 해버림으로써 당대의 영웅은 고려의 개국왕인 '왕건'뿐이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떤 것이다. 뭐.. 고려시대때 쓰여진 삼국과 후삼국의 역사이니...어련했겠어...
암튼... 그런 것들 보면.. 참 재밌다.. 억울하면 출세하고 성공하라는 말은 역사적 불변인듯. 왕건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천년동안 지하에서 억울해하고 있을꺼 아냐..... "아녜요, 사실과 달라요~"하고.
왕건할 시간이다. 왕건보러 가야지~~ ^^
'태조왕건'이라는 사극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난 볼 기회가 몇번 없었다.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어제 저녁, 그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을 때, 처장님께서 갑자기 내게 질문을 하셨다.
'저 드라마는 견훤, 왕건, 궁예, 이 세사람의 정치적 지도력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거 아냐? 물론 왕건이가 결과적으로 성공을 한 사람이니 앞으로의 극 전개야 왕건이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되겠지만, 박기원이는 그 세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너무 느닷없고 뜽금없는 질문이라 무척 당황했다. 하지만 난 그 드라마를 잘 보지 않기에 '제가 저 프로그램을 잘 보질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힘듭니다.'하고 말했더니 처장님께서 실망하셨다는 듯 아무 말씀도 안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잠시 후 어쩔 수 없이 근 한달여 전에 신문에서 잠시 읽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대강 머리를 짜내어 다시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인재의 등용에 있어 세사람의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 들었습니다. 자신의 부하가 실수를 했을 때 견훤은 가차없이 처단하고, 궁예는 두세번의 기회를 주어 똑같은 잘못을 반복했을 때에는 더이상 돌아보지 않지만, 왕건은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라면 항상 용서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견훤의 그러한 자세도 문제이지만 왕건의 자세 역시 옳은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라 하더라도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 한다면 그것이 몸에 베어 언젠가는 결국 대사를 그르칠 수 있을 것이고, 주위를 잘 찾아보면 그보다 훌륭한 인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실수할 수도 있는 것이니, 어느정도만 용서해주는 궁예의 지도스타일이 제일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정말 찐땀나게 대답했다, 그 드라마 내용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니까. 처장님께서는 말을 이으셨다.
'그렇기도 하지. 그런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해서야. 견훤이는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기는 스타일이지, 그리고 솔선수범해서 어렵고 힘든 일도 밑의 사람들과 직접 같이 하고. 그런 자세는 밑의 사람들의 믿음을 받을 수도 있고 좋은 자세이지만, 작은 집단의 리더가 되기에 적당할 수는 있어도 국가같은 큰 집단의 통치자로서는 좋지는 못하지. 그런 지도자로는 궁예같은 사람이 좋은 것 같아. '북벌'같은 '비전'을 밑의 사람들에게 제시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집단을 이끌어가는 그런 것들 말이야. 물론 궁예야 옳지 못한 일들을 하기도 해서 중도하차하게 되지만...'
'... 왕건은 뭐라그럴까 시류에 잘 영합한다고 할까 그런 사람이지.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주위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것을 읽고 그에 편승하는, 어찌 보면 좀 얄미운 그런 사람이야. 왕이 되는 것도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서야 전면에 나서는.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보면 그런 사람이 오히려 성공을 하는 것 같아. 나당 연합군을 만들어 삼국을 통일한 신라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면 말이야. 우리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이 그래서 그런걸까?'
처장님을 말씀. 생각할 수록 옳은 말인 것 같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교차로에서 붉은 신호를 받고 기다리는 사람보다는, 주위에 주행하는 차가 있나없나 잘 살펴보고 신호를 위반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버리는 사람이 더 성공하고, 대접받고, 잘 사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한국 근대사'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의 젊은 강사가 '김구는 정치가가 아닙니다. 김구는 테러리스트입니다.'라고 했던 말이 이상하게도 기억이 났다. 맞다, 김구는 정치가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독립된 한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이다. 이승만은 정치가였기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이승만은, 왕건 같은, 정세를 잘 읽고 자신에게 유리한 시류에 영합하는 그런 사람이었기에.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과 그 후손들이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꼿꼿한, 그러나 힘든 삶을 살아가고, 반면 친일파들이 여전히 영화를 누리는 것도 그러한 일면이 아닐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정답이 무언지 알더라도, 정말 힘든 문제다.
<친동생 기석이의 답글>
틀렸어.
형은 신라 창시자 박혁거세의 69세손으로서, 신라의 55대 왕인 경애왕에게 쓰러져가는 제국의 왕위를 넘겨준 54대 경명왕의 40세 손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어.
장군이 그런식의 질문을 했을때.. "처장님은 왜 동시대의 삼한의 한 제국이었던 신라의 경애왕은 제껴놓고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TV프로그램에 얼굴을 잘 들어내지 않았다하여 신흥 강성대국 백제와 태봉에 맞서 쓰러져가는 왕국을 복흥시키려 애썼던 경애왕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잘나가는 시절의 제국의 왕보다 허물어져가는 혼돈속의 제국을 넘겨받아 다스려야 했던 경애왕의 통치능력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라고.. 캬캬.. 그렇게 말했다면 한대 맞았겠지?
역사는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어진다. 이에 왕건은 위대한 대제국의 건설자로 궁예는 미치광이로.. 견훤은 이성이 부족한 불같은 감성주의자로 묘사되는.. 그리고 경애왕은 타락한 신라제국의 통치권의 대표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TV프로그램 또한 역사서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대본으로 제작되니....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왕건은 우리가 만주벌판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길을 놓쳐버린.. 그래서 이 코딱지만한 반도에 웅크리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도... 겨우 함경도 북쪽에 천리장성이나 쌓고 주저앉아버린... 그렇지만 어느 역사서에도 왕건을 실패한 개척자라 묘사하지 않는다.
그리고 경애왕과 왕비의 죽음도.. 참 비참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후백제의 견훤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야땅을 넘어 금성(경주)로 진격해오고 있는 와중에도 '포석정'에서 술잔을 띄워놓고 흐느적거리며 놀다가 견훤의 발앞에 무릅을 꿇고.. 왕비는 견훤과 그의 군사들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현대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던데......
타락한 신라왕가의 대표적 장소로 꼽히는 '포석정'이란 곳은 신라의 남산(신라를 지켜주는 산신이 살던 경주의 산)을 향하여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적이 침공했을때 왕과 왕비가 친히 나아가 남산의 주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라 한다.. 중국에도 '포석정'과 똑같이 생긴 제단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 즉.. 후백제의 군사들이 가야산을 넘어 들개떼처럼 몰려들고 있을때.. 경애왕은 흐느적거리며 포석정에서 가야금 뜯으며 술을 퍼먹고 있던 것이 아니라.. 제국의 마지막 운명을 손바닥으로라도 막아보고자 포석정을 찾아 경주 남산신에게 눈물로 제를 올리고 있다 침략자 견훤의 칼에 부인과 함께 산천을 떠도는 원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국내 현존 유명 사학자의 공통된 견해이며 KBS 역사스페셜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졌음)
역사서엔 이 왜곡된 기술로 경애왕은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무능한 왕으로,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은 신라를 통째로 왕건에게 넘겨주고 고려로 투항해버린 비굴한 인간으로, 견훤은 이성적 판단이 부족한, 한 제국의 왕비까지 욕을보인 지저분한 인간으로.. 궁예는 일찌감치 똘아이 취급을 해버림으로써 당대의 영웅은 고려의 개국왕인 '왕건'뿐이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떤 것이다. 뭐.. 고려시대때 쓰여진 삼국과 후삼국의 역사이니...어련했겠어...
암튼... 그런 것들 보면.. 참 재밌다.. 억울하면 출세하고 성공하라는 말은 역사적 불변인듯. 왕건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천년동안 지하에서 억울해하고 있을꺼 아냐..... "아녜요, 사실과 달라요~"하고.
왕건할 시간이다. 왕건보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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