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2, 2017] 만년필 하나하나에 사랑과, 추억과..

2017. 8. 22. 08:15Fountain Pens

내가 찍었던 만년필 사진들을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예전에 썼던 글.


2002년을 전후하여 www.daum.net의 카페인 펜후드(http://cafe.daum.net/montblank)에서 활동하던 시기,

그곳에 썼던 글이다.


변리사 시험에 합격한 것이 2003년이니, 공부는 안하고 이런 헛짓(?)을 하다니.. ㅋ


아무튼 옛 추억이 방울방울..






2002.11.12. 00:32

Re: 만년필 하나하나에 사랑과, 추억과..




제겐 만년필이 4자루 있습니다. 하나는 Reform사의 모델명 모르는 것이고, 두번째는 Miko fancy에서 나온 만년필, 세번째는 Parker 45, 네번째는 Rotring Artpen입니다. 


저의 첫 만년필인 Reform만년필을 바라보면, 6년간의 초등학교시절을 마치고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진학한 중학교 입학식이 생각납니다. 

비오던 날의 입학식, 반배정을 받고 난 후 처음 접한 담임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 다른 친구들과 만년필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던(^^) 기억, 만년필에 촉사이즈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왜 내 만년필(F촉)은 다른 친구의 것보다 굵게 나오지' 하고 불평하며 뒤집어써보던 기억(뒤집어 쓰면 가늘게 나옵니다. ^^) 등등. 중학교 3년간의 추억이 Reform만년필에 담겨있습니다. 


두번째 만년필인 Miko fancy(아마도 바른손팬시 계열이 아닐까 싶습니다)에서 나온 만년필은 당시(93년) 만원이었던 만년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 만년필을 잊고 살다가 고2때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샀죠. 

중1때는 초등학교 졸업선물, 중학교 입학선물로 받은 만년필을 쓰던 친구들이 꽤 있었지만, 이때는 그러하지 않았죠. 저 혼자만 꿋꿋이. ^^ 캐트리지 방식이던 그 만년필의 캐트리지에 빠이롯트 잉크를 주사로 채우던 기억부터 시작해서, 만년필에서 비롯된 만년필을 사용하시던 선생님과의 대화, 가까워짐 등등, 고2~3때의 기억이 새롭게 납니다. 


세번째 만년필인 Parker45는 장군이 떠오릅니다. ^^; 

웬 장군이냐구요? 제가 군복무당시 장군 운전병이었거든요. 제 전역선물로 장군님께서 주신 만년필이 바로 이것이지요. 물론 장군 자신은 146을 쓰고 계셨기에, '에이, 좀 더 좋은 걸 주지'하는 얄팍한 범인의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일개 병의 전역을 축하해주며 지으시던 미소에 그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답니다. 군복무하면서 들었던 미운정, 고운정들, 45를 바라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지요. 


네번째 만년필인 artpen을 보면, 치열했던 지난 여름이 생각납니다. 

변리사 1차 시험을 5월에 치르어 붙은 후, 8월 하순에 있었던 논술시험인 2차시험을 대비해서 artpen으로 답안작성연습을 종이에 불이나게(?) 했기 때문이죠. 6, 7, 8월 세달 동안 사용한 종이양이 3500여장 정도 되려나.. 글씨로 가득찬 종이로..

artpen을 보면, 밖에서 들리는 월드컵의 함성을 뒤로 하고 도서관에서 눈물과 땀이 섞인 육수(?)를 흘리며 보냈던, 나름대로 치열했던 지난 여름날이 생각납니다.. 억울하게도 진짜 시험볼 때는 artpen으로 쓰지 못했지만.. (왜냐구요? 궁금하시면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보세요. ^^) 


서설(?)이 길어졌네요. 


만년필을 보면, 그 하나하나의 펜, 그 하나하나의 스크래치에 담긴, 잊고있던 추억들이 아스라히 떠오릅니다. 정말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요. 그때그때는 힘들었을 지는 몰라도, 후에 미소를 지으며 펜을 바라볼 수 있는 행복과 여유.. 아마 만년필이 아니면 가져볼 수 없지 않을까요? 

몇년 전 한창 고전음악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일주일걸러 신나라레코드점에 가서 몇시간이고 있었죠. 그곳에 가면 마치 그곳의 음반이 모두 제것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선 충동구매를 했죠, 몇장씩. 집에 와서요? 몇번 듣지 않고 구석에 밀리는 음반이 생깁니다.. 

유명 레이블, 혹은 그렇지 않은 레이블이라도 음반을 낼 정도의 연주자의 연주라면, 모두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 훌륭함을 어느 한 순간에 모두 깨달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여러번 오랜 시간동안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신만의 명반이 생기게 됩니다. 

만년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여러 자루 충동구매하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펜이 생긴다면, 그 펜에 대해서 얼마나 알게 될까요. 펜촉이 18k이고 무늬가 어떻고 무엇으로 도금되어 있고.. 그게 과연 그 만년필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일까요.. 저보다 정말 만년필을 아끼시고 오래 사용하신 분들이 많기에 이렇게 말하는 게 어리석게 들리실 지도 모르겠지만, 전 아직도 45를 쓸 때마다 새로운 것을 알고 느끼게 됩니다.. 

물론 더 좋은 펜을 가지고 싶은 생각도 많아서, 하루에도 여러번씩 e-bay를 들낙날락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물론 고시준비생의 신분인지라 돈도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펜에 담을 수 있는 추억의 공간이 아직은 넓기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