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Aug 2004] 4박5일의 중국여행, 넷째날 - 북경의 천단공원, 만리장성, 오리구이 및 서커스.

2004. 9. 9. 08:38China 2004

중국여행 넷째날인 오늘은 북경 여행 두번째로, 첫째날에 들렀던 천안문광장과 자금성 이외의 다른 곳들을 둘러보는 날이다. 다행이도 비는 오지 않았지만, 하늘에는 엷은 구름들이 잔뜩 있었다. 오늘도 푸른 하늘을 사진에 담기는 힘들겠구나 싶었다.

오늘은 천단공원, 명13릉, 만리장성 등을 둘러본 후, 저녁에는 북경 서커스를 관람하는 일정. 물론 중간에 비단공장 및 매장, 그리고 금보당이라는 유명한 중국의 약방에 들리기로 되어 있다.

다소 일정이 빡빡하여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여, 첫번째 장소인 천단공원에 7시 30분경 도착하였다.


천단공원(天壇 公園) 입구. 중앙의 문 뒤로 멀리 황궁우의 뾰족한 지붕이 희미하게 보인다.

먼저 천단공원에 대한 간략하지만 상투적인 설명.. ^^

천단공원은 명·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북경시 남쪽에 위치해 있다. 명 영락(永樂) 4년(1406)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영락 18년(1420)년에 완성되었다.

전체 면적은 270㎡이며, 북경 자금성의 면적에 비해 2배 이상 크다. 천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사당 건축물로, 명·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당시의 황제에 봉해진 자들은 스스로를 "천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대자연을 숭배했으며, 천지를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제왕의 중요 업무였다. 그래서 고대 설계사들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힘을 다했다...고 한다.

아, 잠시만 상투적인 설명을 더 하자.. ^^;

천단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명확하게 내벽과 외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쪽의 벽은 원형이고 남쪽의 벽은 사각형인데,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에 부합하는 것이다. 북쪽 벽은 또한 남쪽 벽에 비해서 높은데, 이것 또한 "천고지저(天高地低 :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두 개의 벽은 또한 천단을 내단과 외단으로 구분하는데, 주요 건축물은 내단에 있다. 북쪽에는 기년전(祈年殿)과 황건전(皇乾殿)이 있고, 남쪽에는 원구단(圓丘壇)과 황궁우(皇穹宇)가 있다...고 한다.

자금성의 2배의 면적.. 자금성도 넓고도 넓었는데, 그곳보다 더 넓다니. ㅡㅡ;

자, 그럼 천단공원 깊숙히 들어가보자..


원구단(圓丘壇).

제일 먼저 우리를 맞이한 것은 원구단. 사진으로 알 수 있다시피, 백옥석 난간으로 둘러싼 3층 석조 원대로 높이가 대략 5m이다.

천심석이라고 하는, 원구단 상층 단면의 중심에 위치한 돌이 있으며, 그 중심석에서 밖으로 층마다 9환의 부채형 석판을 깔았는데 환마다 9개씩 더 가하여 도합 3,02개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원구단이 있었다.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원구단이 있었으나 일제시대때 조선 총독부가 철거했으며, 다시 재건할 것을 우려해 철도호텔, 즉 지금의 조선호텔을 지어버렸다고 한다..


원구단에 올라 바깥쪽을 바라본 모습.

기와가 있는 제일 바깥쪽 담은 사각형 모양이며, 그 안쪽 기와담은 원형이고, 그 안쪽의 원구단은 원형으로된 3층의 단으로 되어 있다.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 형상은 땅을 상징한다고. 제일 바깥쪽 담이 사각형 모양인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천단의 남쪽 벽이 땅을 상징하는 사각형 형상이기 때문이다.


원구단에서 그 북쪽의 황궁우를 바라본 모습. 몇개의 돌문과, 황궁우를 둘러싼 원형의 회음벽(기와 지붕이 있는 벽)이 보인다.


황궁우(皇穹宇). 저 건물 안에서 황제가 제사를 지냈단다.

우리나라의 철거된 원구단 옆에도 황궁우가 있었으며, 지금도 황궁우는 조선호텔 경내에 보존되어 있다.


황궁우 내부. 황제가 저곳에서 제사를 지냈단 말이지..
실내여서인지 아니면 최근 보수해서인지 단청이 선명했다. 각종 향을 피울 수 있는 향로가 잔뜩 있었다.


황궁우 기단의 용머리 조각. 자금성에 있는 것과 동일해 보인다. 역시 비가 오면 용의 입에서 물이 뿜어나온다고..


황궁우 앞에서 기념 사진. 저 옆의 썬글래스 걸친 중국인 아저씨가 멋진 내 카메라를 처음 보는지 계속 얼쩡거렸다. ㅡㅡ;


황궁우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회음벽(回音壁).

저 벽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그 덕에 저 벽을 타고 소리가 전달된다고 한다. 위 사진에서 문 옆에 어떤 아주머니가 벽에 귀를 대고 있는데, 저 문 반대쪽 옆에서 벽에다 대고 말을 하면 그 음파가 이중의 회음벽 내부를 타고 돌아와서 저 아주머니가 귀를 대고 있는 벽에서 들을 수 있다. 마치 우리 어릴 때 하고 놀던 실을 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인솔자 박문수씨(위 사진에서 하늘색 티를 입고 있는 사람. 남자다.)가 내게 귀를 대고 있으라고 하면서 저쪽 벽에서 뭔가를 외쳤는데, 정말 들렸다. 귀를 벽에 댈 필요도 없이 잘 들렸다. 그런데 박문수씨가 외친 말은..

'사랑해~'였다. ㅡㅡ;

(오해하지 말라.. 우리는 한방을 썼지만 건전하게 지냈다.. ㅡㅡ;)


기년전(祈年殿)을 향하는 길. 멀리 기년전이 보인다.

멀리 있는 문 뒤의 기년전을 향해 가는 길이다. 이 길을 보면 가운데에 흰 대리석이 있고 그 양쪽에 길이 나 있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러 가는 길이니만큼 스스로 천자라고 하던 황제도 이곳에서만큼은 인간으로 행동했다고. 즉, 가운데 있는 흰 대리석 길은 하느님이 걷는 길이라고 해서 그 길은 비워두고 그 좌측의 길로 황제가 걸어갔으며, 그 우측길로는.. 누군지 생각이 안난다. ^^; 아마 황족 아니면 시중이겠지?


기년전. 아무튼 중국인들은 큰걸 좋아한다니까.

대들보나 마룻대를 사용하지 않는 중국의 독특한 건축기술로 지어졌다고 한다.

기년전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의 붉은 벽에 있는 12개의 기둥들은 12지시(24시간)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 내부의 사진은 찍지 않았는데, 내부에 위치한 바깥쪽의 붉은 12개의 기둥들은 1년 12달을 상징하며, 외부의 12개의 기둥들과 안쪽의 12개의 기둥들의 숫자를 합치면 24개로서 이는 24절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안쪽의 12개의 기둥들 안쪽에는 금박무늬가 있는 4개의 기둥들이 또 있는데, 이는 춘하추동 4계절을 상징한다고..


기년전의 현판.


기년전을 나와 넓디넓은 천단공원을 탈출하기 위해 계속해서 걸었다. 그나저나 웬 중국인들이 그리도 많은지..


칼춤추는 할머니.

천단공원에는 다양한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더 안쪽에 위치한 원구단, 황궁우 및 기년전 등에는 들어갈 수 없는 월표(月標)를 싸게 사서 이곳 공원 안에서 운동 등을 하는 사람들. 재기를 쉬지 않고 차는 사람들, 칼춤을 추는 사람들, 태극권을 하는 사람들, 스포츠 댄스를 하는 사람들, 희안한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 등등..

서울에 살면서 아쉬운 점들 중의 하나가 바로 공원의 부재다. 그런 점에서는 이들이 부러웠다.


천단공원에서 10시가 조금 넘어 나와, 비단공장 및 매장을 들렀다. 직접 누에로부터 실을 뽑으며 물건을 팔기도 하는 곳.

알고보니 누에고치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의 고치 안에 한 마리의 누에가 들어있는 것이고, 다른 것은 하나의 고치 안에 두 마리의 누에가 들어있는 것. 전자는 실을 뽑아 비단 천을 만들고, 후자는 실을 뽑아 이불의 솜 대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뭐 비단 천이야 말 안해도 좋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실크솜(?)이불은 처음 봤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정말 가벼웠다. 같이 간 아주머니들이 대량구매.. ㅡㅡ;

난 어머니 드릴 실크 속옷만 샀다. ^^;;;


점심식사를 한 식당. 정말 컸다.

중국에서는 음식을 맛있게 하는 자그마한 집보다는, 그냥 보통 맛을 유지하면서도
규모가 큰 식당이 장사가 훠얼씬 잘된다고 한다. 그네들의 속성이 그런가보다.


점심식사를 한 식당 입구의 칠보.
우리나라에도 화문석과 나전칠기가 있지만, 중국에도 칠보가 있다. 자신들의 칠보에 대해 상당히 자부심이 큰 것 같았다.


점심식사 후 1시경 명13릉에 도착했다.


명13릉(明十三陵) 중 하나인 장릉(長陵) 입구의 설명판.


명13릉 전체를 표시한 지도(?). 주산, 좌청룡, 우백호 및 임수가 완벽히 갖춰있었다.

역시 상투적인 설명을 잠시..

명13릉은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묘로서, 북경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진 창평현(昌平縣) 천수산(天壽山) 기슭에 위치해 있고, 면적은 약 120㎡이다. 명나라 선조의 장릉(長陵)이 명 영락7년(1409년)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에 11개의 릉이 장릉의 양 옆으로 세워졌다. 명 송정제 주유검(朱由檢)의 사릉(思陵)이 마지막 릉인데, 청 순치(順治) 원년(1644년)에 정릉(定陵)이라고 칭해지고 땅 위에 건축하였다.

명말(明末)과 청초(淸初) 시기의 많은 전쟁들과 그 이후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청 건륭(乾隆) 50-52년(1785-1787)에 비교적 큰 복구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장(長), 정(定), 소(昭)릉 세 곳과 신도(神道) 네 곳만이 대외에 개방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정릉 지하 궁전은 1956년에 최초로 발굴한 황제능묘이다. 지하궁전은 높이 27m, 면적 1,195㎢의 완전한 석조구조로서 견고하고 삼엄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청나라의 건륭제가 명나라의 황제들의 릉을 복구했을까..

아무튼 우리는 개방된 곳 중의 하나인 장릉으로 향했다.


장릉 입구의 커다란 건물 내부. 장릉의 주인의 거대한 동상이 있다.

위 사진의 사람들에 비하면 건물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저 높다란 건물을 지탱하는 나무기둥들을 보면 아랫쪽에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보호유리(플라스틱)를 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는데, 저 나무기둥들 하나하나가 국보급이라고 한다.

저 나무들은 붉은 색을 띠고 있는데, 색을 칠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러한 것이라고. 그리고 벌레가 절대로 먹지 않는다나?


천장과 나무기둥.


장릉 입구를 지나면 나오는 또 다른 건물. 뭐하는 건물인지는 모르겠다.

이 건물 뒤편으로 자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그 동산이 장릉이라고 한다.
중국 공산당이 그 릉을 발굴하기 위해 땅굴(?)을 파고 들어갔으나, 릉이 무너져버렸다고..


앞 사진의 건물 하부의 입구. 웬지 으시시한 느낌..


그 건물 위에 올라 지금까지 들어온 방향을 향해 바라본 모습.
저 앞의 큰 건물이 아까 국보급 나무기둥들이 있던 그 건물이다.


명13릉을 나와 금보당이라는 유명한(?) 약방을 들러 잠시 견학을 한 후, 유명한 만리장성을 향했다. 상당히 멀었다. 대략 1시간 가량 버스를 탄 것 같다.


만리장성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실은 내려오면서 찍은 사진이다.


만리장성.

워낙 유명해서일까?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이 컸다. 구불구불 길긴 정말 길었으나,
폭은 대략 4~5미터 정도로 매우 좁았다. 그냥 성이구나 싶었다.


80년대 만리장성을 보수하면서 수많은 시신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장성을 만들다가 죽은 사람들의 시체. 산 정상에 만들고 있었고, 감시가 심해 멀리 가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들짐승들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지 않도록 장성 아래에 묻었다고.. 만리장성을 10발자국을 걸으면, 그중 6발자국은 시신 위를 지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뭐, 그래도 기념으로(ㅡㅡ;) 만리장성 위에서 찰칵.


북경 오리구이.

북경 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북경 오리구이. 저녁식사로 북경 시내에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오리구이를 먹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오리구이와는 완전히 틀렸다. 기름기가 상당히 많아서, 같이간 일행 중의 아주머니들은 얼마 드시지 못하더라. 난 워낙 느끼하고 기름진 것을 잘 먹는 편이라 자알 먹었다. ^^;;;

요리사가 직접 옆에서 오리고기를 발라주면, 그것을 받아다가 밀전병에 채썰은 오이와 함께 싸서 먹는다. 내게 있어서는.. 맛이 일품이었다. 아, 갑자기 또 배고파진다. ㅡㅡ;


저녁식사 후 북경 서커스를 관람했다. 공연은 볼만 했으나, 너무 뒷자리에 앉기도 했고, 실내가 어둡기도 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래도 85mm(디지털 바디에서는 대략 127mm)로 몇장 찍었는데, 그 중 일부.


중국 서커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자전거 하나를 여러명이 타기.


서커스까지 관람하고 호텔에 돌아오니 9시. 약간 이른 감이 있기도 했고,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라서 아쉽기도 해서, 인솔자 박문수씨와 함께 호텔 바에서 같이 술을 먹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즐기다보니 어느새 새벽 1시 30분. ^^


내일은 중국에서의 마지막날. 빡빡한 일정으로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 해의 첫 휴가가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인지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