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잘 가요.

2014. 10. 28. 08:45Art



난 대중음악적으로 좀 늦된 편이었다. 그랬던 내가, 내가 가진 돈으로 처음으로 산 음악테이프가 1991년 중3 여름에 구입했던 신해철 2집 “Myself”였다. 반 친구 봉석이가 쉬는 시간이면 항상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듣던 음악을 접하고는 바로 샀었고, 그 앨범에 있던 노래 하나하나를 듣고 또 들었다. 특히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는 인트로의 피아노 소리가 너무 좋아서 피아노로 따라 치면서 부르기도 했고.. 그 테이프를 처음 산 날, 워크맨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버스 운전석 바로 뒷자리 창가에 앉아 느끼던 (내 서식지가 아니던 거기에 왜 갔는지 모르겠지만) 종로에서의 따스한 햇살의 감촉이 여전히 생생하다. 1992년 고2 여름, 경주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기차 안에서도, 그 당시 광풍이었던 서태지의 "난 알아요"가 아닌 N.EX.T 1집을 선호와 함께 들었고.

대중음악적으로 좀 늦된 편이었던 나는 신문물(?) 쪽으로도 좀 늦된 편이었다. 그래서 대유행하던 삐삐도 대학교 3학년이던 1997년 가을에서야 갖게 되었고, 내 삐삐의 인사말(인사곡?) 첫 선택 역시 신해철의 노래였다. 학교 28동 1층 대형강의실에 있다가 처음으로 수신한 삐삐 메시지는 과 동기 용진이형의 메시지였는데, 내용은 “노래 좋다. 직접 피아노 치며 부른거야?” 신해철이 부른 거였는데.. ^^;

소셜테이너로서의 그도, 그의 생각과 내 생각이 언제나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입장에 서는 편이라는 점에서 언제나 마음 깊은 지지를 보내곤 했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F.R. David의 Words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신해철과 전혀 관련 없는 노래이지만, 신디사이저 음색이 충만한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내가 처음으로 샀던 신해철의 Myself가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의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를 함께 했던 마왕. 너무너무 슬프지만, 잘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