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Aub 2001] Excel을 타는 Excellent한 가족.

2004. 6. 4. 13:25Thought

어제 저녁, 대전 유성의 '삼복가든'에서 저녘을 먹다가 겪게 된 일.

음식점 방에서 불고기를 먹고 있는데, 한 가족이 그 방으로 들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두 아들이 있는 젊은 부부. 그들 네 식구는 내가 있던 테이블의 대각선쪽 건너편의 테이블에 앉았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30대 후반의 동안(童顔)의 남자(그 사람의 나이는 아이들로부터 추측한 것이고, 실제 얼굴로는 30대 초중반이었기 때문에 '동안'이라 한 것)는, 그저 평범한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즐거워야 할 네가족의 외식자리 치고는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약간 어두운, 무언가에 찌들린 듯한, 그리고 자신감 없어하는 그러한 얼굴이었다. 그 남자의 부인은 나를 등지고 있어 살피진 못했고, 두 아이들은 무척 밝았다.

잠시 후, 점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점원 : 어떻게 드실래요?
손님 : 불고기 2인분하고...
점원 : 2인분이요?
손님 : 예.. 그리고 냉면 2인분이요.
점원 : 2분밖에 안드실 거예요? (적대적인 어조는 아니었음.)
손님 : 아, 아뇨. 그냥 그렇게 주세요.

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 집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을 때, 우리 네 가족이 외식을 하게 되면 항상 부모님께서는 얼마 드시지 않고 나와 내 동생만 챙기곤 하셨다.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어떻게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 모른체 하며 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대로 낼름낼름 먹곤 했던, 그런 약간은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어쨌든 그들도 아직 그다지 여유롭지 않나보구나 하고 느끼고서는 내 생각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잠시 후, 어디선가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그 진원지를 알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바로 그 가족이었다. (놀랍다니.. 나역시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인가보다. ^^) 어쨌든 그 네 식구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영어를 더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 같았다.

대전, 유성 근처에는 대덕연구단지가 있다. 나는 아마도 그 남자가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서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사람이려니 추측했다. 아이들은 유학지에서 태어나거나 그곳에서 자라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겠지.

잠시 후, 주차장에서 소요하고 있는데, 그 가족이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 한켠에 있던 다 쓰러져가는 Excel을 타고선 어디론가 떠났다.

글쎄...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물론 나는 그 사람과 한마디 대화도 나눠보지 않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 사람이 유학을 다녀왔는지도, 그 사람이 사기를 당했을런지도 모르고, 아니면 아직은 가능성이 많은, 내가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젊은 부부였을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러한 것(내가 관심을 가지는 그러한 것)에 관심이 없는 진정 행복한 사람일런지도.

하지만 난 내가 추측한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리고 그 옆에 자리를 잡는 또 한가지 생각..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내가 너무 물질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Excel을 타는 Excellent한 가족..

우리 사회는, 힘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기를 펴는 것 조차도 못하는 그런 사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