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Apr 2001] 서정미와 화려함의 조화, 쇼팽 연습곡.

2004. 5. 31. 19:57Art

4월 하순의 새벽공기는 아직 차가울런지는 몰라도, 낮엔 정말 봄임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따사로운 햇살, 투명한 연두빛의 자그마한 나뭇잎들. 모든 것이 너무나도 평화롭고 행복하게만 보인다.

봄의 이러한 따사로움을 잘 나타낸 곡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쇼팽 연습곡 중에 있다. 그게 몇번이더라... ^^;

쇼팽 연습곡은 Op.10과 Op.25 두 가지로 되어 있는데, 각각 12곡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외에 작품번호 없는 3곡까지 합해 모두 27곡이다. 위에서 말한 그 곡은 일명 '나비'라고도 불리는 곡으로 Op.25의 9번째 곡이다. 그 곡을 들으면 정말 봄햇살을 받으며 봄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꽃들 사이로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장면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많은 이들이 봄의 대표적인 곡으로 뽑는 비발디의 사계의 '봄' 보다도 훨씬 봄내음 물씬 풍기는 그러한 곡이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쇼팽의 연습곡은 이 곡보다 훨씬 매력적인 곡들로 가득 차 있다. 쇼팽 서정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Op.25의 첫번째 곡(일명 목동의 피리소리)을 비롯해 정말 그 별명만큼이나 격정적이고도 정열적인 대양, 이별의 곡으로 잘 알려진 3번 이별곡, 바르샤바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과 분노에 차서 작곡한 강렬한 음악인 혁명 등 얼마나 아름다운 곡들이 많은지 모른다. 27곡 모두다 정말 주옥같은 /명/곡/이다.

내가 이 곡을 처음 접한 것은 96년 12월 초, 땅거미가 내릴 무렵이였다. 당시 난 음악을 듣는 것에만 만족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향유하기로 결심, 바이얼린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다니던 그 음악학원에 음대 피아노과 지망생이던 당시 고3 여학생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피아노소리... 난 그 연주를 듣고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만 알았다. 정말 화려하고도 격정적인 그 곡을 듣고, 연주가 끝나고도 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여학생이 잠시 자리를 떴을 때 난 몰래(?) 그 악보의 표지를 훔쳐 보았고, 그 표지엔 'Chopin Etude'라고 씌여 있었다. 난 바로 다음날 이 음반을 샀다. ^^ (참고로, 쇼팽이 연습곡은 대부분의 음대 피아노과 실기시험곡이다. 그리고 그 여학생이 연주했던 곡은 25곡 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격정적이면서 멋진 op.10의 4번곡이였다.)

그 곡을 들으면 들을 수록, 정말로, 정말로 그 곡을 직접 연주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25곡의 악보를 샀으나, 내가 연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음반을 수도없이 들으며, '아 난 왜 피아노교습을 국민학교 때 그만두었던 것인가'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정말 어느 누구든, 이 곡을 듣고서 흠뻑 빠져들지 못한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ps. 이 연습곡을 듣고 난 후 '연습곡'이란 제목의 곡들을 찾아다니다가(^^) '리스트'의 '초절기교연습곡'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 쇼팽의 곡만큼 감동을 주진 않더군요..


-저의 음반-

Maurizio Pollini

-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이 음반을 대표적인 명반으로 뽑지요. 저는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정말 이정도면 명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답니다. 정말 후회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사실 이 음반으로 전 폴리니의 팬이 되서, 폴리니(뵘)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도 샀는데, 그건 별로더군요. ^^). 저는 그 여학생의 연주를 듣고 그 다음날 서울대입구전철역 사거리에 있는 한 음반점(이름이 '시온' 어쩌구였는데)에서 헤메다가, 그 주인 아저씨의 추천으로 사게 되었는데, 정말 끝내주는 연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