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ep 2001] 진정한 안식처란..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2004. 6. 5. 10:57Art

이 곡의 제목만 보고는 많이들 생소할런지 모른다. 하지만 막상 이 음악을 들어보면, '아, 이고옥'하는 이도 많을 것.

바로 영화 '샤인(Shine)'에 삽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96년 12월부터 97년 3월에 걸쳐 상당히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그 영화.

남들은 그 영화를 말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날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게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친구 '기용'이다. 기용이와 97년 2월 하순, '호암아트홀'에서 같이 이 영화를 봤기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만일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헬프갇'처럼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길리언'만큼은 아니더라도 날 저버리지 않을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

그리고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이 영화의 포스터인, 헬프갇이 트램펄린(trampoline, 우리말로 방방)위에서 뛰는 장면. 정말 '자유'가 느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포스터에서 헬프갇을 보면, 바지를 입고 있는 듯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사실 영화속에서 이 장면을 보면 헬프갇은 외투 하나만 걸치고 벌거벗은 채로 뛰고 있다. ^^)

그 다음 생각나는 것은? 이 영화로 유명해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물론 멋진 곡이지만 아쉽게도 아니올시다이다.

세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헬프갇이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그 모습 자체때문이 아니라, 영화속에서의 그 아름다운 공동묘지의 전경과 함께 울려퍼지는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라는 곡때문이다. 정말 평화스러운 전경과 함께 울려퍼진 그 곡은 그 짧은 순간에 나의 뇌리 속에 깊게 자리잡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은, 어린왕자가 그의 별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그래서 의자를 옮겨가며 어느날 마흔네번이나 바라봤던 '엷게 노을이 번지는 하늘'이다. 하지만 이 곡을 들을 때만은, 영화 속에서의 그 연초록빛 전경이 떠오른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비발디가 신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곡의 뜻은 아마도 '천국만큼 평화로운 곳은 없으며, 이 세상에는 천국같은 참 평화는 없다'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 영화속의 연초록빛 전경은, 바로 이곳이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연초록빛 전경... 공동묘지와 천국, 평화, 자유, 행복, 그리고 안식. 정말 죽음만이 이러한 것을 궁극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일까?

언제 어디서라도 이 곡만 들으면 난 '평화'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평화가 아니라 '순수'속에서의 '평화'와 '안식'.

절친한 과 친구인 성우가 과 동기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석사 01학번 모임에 참석했다는 글인데, 그 글에서 짧은 그의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히...어제...이동훈이랑..석사..01 개강파티갔었다.....느낌은..사람들이..참..순수하다...물리가..사람들을..순수하게 만드는걸까....아니면..순수한 사람만이..물리를..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어떠한가. 정말 순수했다. 그리고 지금도 순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우의 그 글을 읽는순간, 정말 내가 순수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아쉬움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다른 것 때문일까. 진정한 나의 평화롭고 행복한 안식처는 어디일까...

-저의 음반-
Antonio Vivaldi, Emma Kirkby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로 번역되는 이 곡의 원 제목은 'Nulla In Mundo Pax Sincera'이다. 아마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같이 평화로운 곳은 이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라는 뜻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 성악곡의 장르는 '모테트(motet)'로, 간단히 말해 대위법적 기교를 쓴 성악곡을 말한다. (정확하지 않다... ^^) 음악은, 단선율(하나의 음으로만 이루어진 것)을 제외하면 음의 수직적결합(화음,화성)과 수평적결합(멜로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전자의 음악을 화성음악(homophony), 후자의 음악을 다성음악(polyphony)이라 하고, 전자의 기법이 화성법이고 후자의 기법이 대위법이다.

대위법의 근원은 카논(canon)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조지 윈스턴(George Winston)'이 편곡한 '카논의 변주곡'을 들어보면 하나의 기본이 되는 멜로디가 나오고, 그 멜로디의 변주가 계속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카논'기법이다. 이러한 '모방성'이 바로 대위법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 모방성이 가장 엄격한 것이 바로 카논이고 이 기법이 좀 더 발전된 것이 '모테트', 그리고 더욱 발전해서 '푸가'가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이 음반은 Soprano Emma Kirkby의 음반인데, 정말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페이지 상단의 '클릭'을 눌렀을 때 나오는 것이 바로 커크비의 노래. 커크비는 아일랜드태생으로 옥스포드에서 고음악을 전공해서인지 고음악 레코딩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꼭 한번 들어보길,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