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의 추억

2015. 1. 23. 16:02Thought



송하연차회라. 유홍준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맛깔스럽다.



유년시절, 어머니께서는 대외적으로 비흡연자셨던 아버지의 흡연을 참으로 싫어하셨고, 그 영향인지 난 부지불식간에 담배를 접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시절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이뤄졌던 동문회는 너무나 즐거운 시간과 공간이었다. 특히나 술집과 같은 유흥업소의 야간 영업이 금지되었던 그 시절, 셔터를 내려 담배연기 빠져나갈 구멍 하나 없는 그곳에서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듣고 나누었던 추억은 다시 경험할 수 없는 그리운 기억일 뿐이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다니게 된 후에도, 여전히 난 비흡연자였다. 하지만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절친한 동기이자 애연가인 태훈이형이 잠시 끽연을 하고자 비상계단으로 갈 때면, 담배연기 가득한 그곳에 함께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태훈이형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어느 밤, 사람에 취해 그리고 분위기에 취해 태훈이형의 담배를 입에 물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애연가였던 물리 선생님께서 담배를 피우게 된 계기를 말씀하셨는데, 술에 취한 기분을 너무 좋아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하면 안되던 어느 날, 담배를 피우니 술에 취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기분이 들고 담배를 다 피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한 뒤로 애연가가 되셨다고.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난 담배연기를 깊숙히 들이마셨음에도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태훈이형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는 그 기분이 너무 좋기만 했다.


담배를 피워봤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중독증상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흡연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변화도 없었기에 여전히 일상 중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태훈이형이나 성우를 만나 술을 마실 때면 가끔 담배를 피우며 그 분위기에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건강검진을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다가 깜짝 놀랄 항목을 접하게 되었으니.. 그 전까지는 "당신은 흡연자입니까?"나 이와 유사한 질문만 있었기에 언제나 자신있게 "아니오"에 표시를 해 왔는데, 그 문진표에는 그러한 질문은 없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20개피 이상의 담배를 피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 아닌가. 당황한 나는 그 동안 내 손을 거친 담배의 개수를 헤아려봤고, 다행이도 20개피 미만이었기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아니오"에 표시를 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술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태훈이형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담배를 피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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