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Mar 2002] 마침표를 찍는 사람, 쉼표를 찍는 사람.

2004. 6. 13. 17:05Thought

퍼온글

내가 극장에서 돈을 주고 멜로라는 쟝르의 영화를 처음 본 작품이 <8월의 크리스마스>였다. 허진호라는 감독(난 처음엔 영화배우 허준호와 헷갈렸음 -.-;)의 데뷔작이었는데 순전히 한석규라는 배우가 좋아 영화를 본 것인데, 나중에는 감독도 궁금해지더라. 전체적으로 심심한 줄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영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로 묘한 흡입력을 지녔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나서 극장에서 다시 그 감독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영화의 제목은 <봄날은 간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특별할 것이 없는 이야기를 적당한 여백을 줘가며 잔잔하게 이어진다. 음악도 좋았지만 내가 흥미를 지녔던 부분은 이별이란 명제에서 두 남녀가 취하는 서로 상반된 태도였다.

세상에는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별이란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이별을 대할 때 천연덕스럽게 넘어가는 이는 아무도 없다. 혹시, 그런 사람을 안다면 소개해달라. 연구를 해보게.

영화 속에서 유지태가 연기한 이상우라는 남자는 쉼표를 찍는 사람이다. 반면, 이영애가 연기하는 한은수라는 여자는 마침표를 찍는 타입이었다.

쉼표와 마침표를 찍기.

이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이 2가지 유형으로 나뉘게 된다.
쉼표를 찍는 사람들은 이별보다도 그 뒤에 밀려올 격정을 더욱 두려워하는 타입이다.

이별의 순간은 "헤어져"라는 말 한마디처럼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지만 뒤이어 찾아올 고통은 내내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 고통을 견디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빨리 상처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과 지금은 헤어지지만 언젠가는 재회를 하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방법이다. 이들은 늘 완전한 end가 아닌 and를 찍음으로써 아직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인연의 고리를 간직하려 한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전자의 경우보다 감정적으로 약한 사람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의 안에서 감정을 차단함으로써 후에 찾아올 상처를 사전에 막으려는 것이다. 전자처럼 막연한 희망을 지니고 얼마나 걸리지도 모르는 기다림을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의 또 다른 유형은 심각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경우, 대부분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다. 어차피 변할 감정이라면 좋을 기억을 지니고 있을 때, 혹은 간극이 보이려는 시기에 서둘러 관계를 청산하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실용적인 사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감정 정리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마치 암세포가 확산되기 이전에 잘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마침표와 쉼표를 찍는 사람 중 누가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것은 견해차이고 사람을 대하는 각자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별의 시기에 둘의 태도가 영화에서처럼 상반된 입장이 될 때이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은 이별을 맞는 순간에는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쉼표를 찍는 사람들은 격정적으로 변하기 쉽다. 그런 까닭에 견해차이로 다투다가 자칫하면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일도 생긴다. 사랑했던 사람들끼리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는 것만큼 유쾌하지 않는 일도 없을 것이다.

'헤어질 때는 미소를 지으며 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연애를 하는 동안보다도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이별을 하는 순간이다. 사소한 해프닝(사실, 많은 연인들이 곧잘 이별을 선언하다가도 바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가)으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일,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거나 서로 거리를 두고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재고할 필요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한번쯤 염두에 두길 바란다.

마침표와 쉼표, 어떤 방법이 더 좋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다. 다만 그 판단이 어떤 결과를 이끌어낼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굳이 사족을 달자면 필자의 경우는 쉼표를 찍으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의 인연이란 언제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같은 하늘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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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13]에 덧붙이는 글.

아니다.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한다면 쉼표를 찍어야 하지만, 상대방과 제 3자들을 배려한다면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

희망고문..

후에 '희망고문'이라는 글을 또 퍼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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