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Oct 2003] 진정한 명품과, 명품같은 삶.

2004. 6. 26. 00:05Thought

먼저 만년필 동호회 펜후드(Penhood)에 올라왔던 글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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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의미

번호:6864 글쓴이:nova 조회:398 날짜:2003/07/23 23:53

저는 명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서글퍼집니다. 어쩌면 현재 이 세상에 명품이란 단어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입니다.

1946년에 생산된 파커 51을 꽂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학생 하나가 묻습니다. 어떤 만년필이냐고.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50여년 전에 생산된 명품이다. 가장 많이 팔린 만년필이기도 하고. 아직도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한번 써볼래.

저는 명품이란 시대를 초월하고, 사용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제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파커 51은 명품 소리를 들어도 될만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지금, 고가품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가제품만을 생산하는 업체에서 새롭게 제품을 출시하면, 매체에서 광고에서 명품이라고 합니다. 누가 명품임을 인정해주었나요? 시간도, 사용자도 없는 상태에서 나오자 마자 명품소리를 듣는 이 희한한 세상에 화도 나고, 기분도 울적해집니다.

모나미 153볼펜, 명품입니다. 코카콜라, 역시 명품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하고, 오랜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명품 중에는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제품도 있고,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도 있습니다.

제가 구입하고 있는 만년필, 정확히 말하면 사치품입니다. 정말로 파커 51처럼 누구나 인정하는 명품을 사고 싶습니다. 은으로 금으로 덮혀있지 않아도 가슴으로 진하게 전해져오는, 진정한 명품의 향기를 맡고 싶습니다.

얼마동안 카페에서 글을 읽으면서 우울했던 감정이 있었습니다. 자꾸 펜의 가격으로 가치를 결정하는 듯한 느낌이 들때 슬펐습니다. 특히 어린 친구들이 펜의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따질 때 더욱 그랬습니다.

카페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활기차고, 많은 분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아주 가끔 지난 해가 그리워집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소중히하던 모습들, 그리고 어설픈 질문에도 신중하게 대답해주시던 분들, 뵙고 싶습니다....

--인천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글이었다.

지난 주 목요일(8/21), 변리사 2차시험을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집으로 오는 길은 124번 버스를 내려서 대로를 따라 오는 길과 골목길을 통해 오는 두가지 길이 있었는데, 후자가 더 빨라 자주 애용하는 편이다.

그 골목길에는 조그마한 상점들이 주욱 있다. 그 중 컴퓨터부품도 팔고 조립도 하는 자그마한 상점 하나가 있는데, 젊은 주인이 낚시 찌를 만지작거리며 낚시줄에 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걸어오던 아주머니 한분이 그 젊은 주인에게 말을 건넸다. "낚시가나 보구나". 이어진 그 젊은 주인의 미소에 실린 짧은 대답. "네".

그 대답을 하던 젊은 주인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정말 행복해하는 그 표정.

삶의 질에 대한 다른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자면 다른 결론이 나겠지만, 그 사람의 표정만으로 판단하자면 그 사람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

진정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진정 명품같은 삶은 어떤 것일까. 난 명품같은 나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라 비싼 나를 만들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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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27]에 덧붙이는 글.

위 글 중간에 있는 사진은 Montblanc 75주년 기념 Special limited edition 146으로, 물론 고가의 만년필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명품임에 틀림없는 펜이다.

클립 등이 일반 gold가 아닌 rose gold로 되어 있고, 하얀색 montblanc 로고도 일반 플라스틱이 아닌 은은한 깊은 빛의 반투명 자개로 되어 있으며, 다이아몬드도 박혀있는. 하지만 지금의 난, 관심없다.

동호회 활동을 하다 보면, 하나의 펜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그 펜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짧은 시간에 많은 펜을 충동적으로 사고, 지혜가 아닌 지식으로 남 앞에서 떠벌리며, 펜에 대해 아주 많이,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펜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비싸고,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명품이라고 하더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게 있어서는 명품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함께한 추억과 기억, 기쁨과 슬픔이 함께 아스라히 배어있는 실기스들을 가지고 있는 펜, 그 펜이 내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다.

사진은 펜후드에서 퍼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