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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0 00:43



David Archuleta
David Archuleta
5.6

'또 아메리칸 아이돌!' 하고 지겨워 할 사람들이 있을겁니다. 하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은 이제는 매년 실력있는 신인들을 발굴해내 미국을 넘어서 전 세계 음악계에 영향을 끼치는 쇼비즈 산업계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올해로 벌써 7년차인 이 쇼에서 또 하나의 스타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로 핫 샷 데뷔하며 강한 인상을 남긴 싱글 'Crush'의 주인공 데이비드 아출레타입니다. 성인을 압도하는 성숙한 가창력, 앳되고 귀여운 얼굴, 바르고 순진한 성격까지 무궁무진한 스타의 자질을 지니고 있던 아출레타는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쇼가 끝나는 날 '진정한 우승자'라며 언론들의 찬사를 받으며 돌풍을 예고한 바 있습니다. 조금만 다듬어도 다이아몬드가 될 만한 이 원석을 잽싸게 채간건 전 시즌 이 쇼의 우승자인 조딘 스팍스를 스타로 만들어 낸 자이브였습니다.

아출레타가 자이브와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대단한 희소식으로 여겼습니다. 시리즈 역대 최악이었던 선곡 주제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데이비드 아출레타는 시즌이 진행되는 내내 끊임없이 지나치게 올드하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가 없었는데, 자이브라면 이러한 단점도 모두 커버해줄 수 있었을테니까요. 자이브는 작년에 조딘 스팍스 같은 후보를 데려다가 최고의 알앤비/팝 틴 스타로 키워낸 바 있죠. 조딘 스팍스는 아출레타보다 훨씬 10대 특유의 폭발할 듯한 에너지가 있었지만. 스팍스의 앨범에는 스타게이트, 존타 오스틴, 언더독스 같은 대단히 컨템퍼러리한 참여진들 부터 월터 아파나시에프, 임마누엘 키리아코같은 정통 팝 작곡가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제작진이 참여하며 본인의 장점이 잘 부각되면서도 세련된 모범적인 팝/알앤비 앨범이었습니다. 제가 아출레타의 새 앨범에 감히(!) 기대한 지점은 스팍스의 앨범과 같은 치기어리지 않으면서도 10대 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로 가득찬 미끈한 앨범이었는데 결과물은 그게 아닙니다.

데이비드 아출레타의 리드 싱글 'Crush'는 제가 기대했던 그 느낌에 잘 들어맞는 곡이었습니다. 임마누엘 키리아코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어덜트 계열 팝락의 느낌, 거기에다가 알앤비의 느낌을 첨가하면서 차트를 휘젓고 다니기에 충분한 곡이었죠. 생각보다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10대이기 때문에, 10대라서, 10대 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의 곡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컨템퍼러리는 거의 여기까지. 앨범은 전반적으로 임마누엘 키리아코의 지휘 하에 대부분 어덜트 계열의 팝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언더독스의 멤버나 로비 네빌, 데스몬드 차일드, 카라 디오괄디 같이 꽤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공동작곡 쯤의 이름을 달고 참여해 앨범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물론 발라드를 듣는 사람 넋이 나갈 정도로 잘 부르는 데이비드 아출레타에게 팀바랜드의 비트나 스위즈 비츠의 클럽 넘버를 바란건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아출레타의 앨범은, 일단 열일곱살 소년의 앨범이니까 이것보다는 어리고 에너제틱해야 합니다. 'Crush', 'Touch My Hand', 'My Hands' 같은 트랙들을 지나가며 잔잔히 퍼져오는 만족감은 You Can이 재생되는 순간 이상 기류를 타게 됩니다. 'Running'에서는 잠시 나아지다가 'Desperate'을 지나고 'To Be With You'가 1분 정도 지났을 때 쯤 듣는 사람은 알게 되죠. '아, 더 이상 바라는 것은 무리구나.'

'Barriers' 같이 강한 베이스를 바탕으로 어떻게든 메인스트림에 투신하려고 안간 힘을 쓰는 곡들이 간간히 있지만 어덜트 계열 발라드 작법에 그냥 힙합 비트를 덧씌운 것에 지나지 않은듯한 (혹은 그 반대인) 어색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기만 합니다. 'You Can'이나 'To Be With You' 같은 트랙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이 곡들은 앨범의 전체 분위기를 훨씬 아래로 끌어내리죠. 예의 10대 가수가 앨범에 갖추어야 할 패기와 열정, 풋풋함을 전혀 지니지 못했달까요. 또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조딘 스팍스 역시 목소리와 창법 자체로는 21세기의 비트의 물결에 동참하기 쉬운 가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딘 스팍스의 'No Air'을 들어보세요. 계속 비교해서 미안하게 됐지만 스팍스의 앨범은 같은 아이돌, 자이브 소속 십대가 낼 수 있는 팝 앨범의 더욱 모범적인 사례라서요. 이 노래는 빌보드에서도 멜로디가 다시 먹힘을 분명하게 증명하는 곡입니다. 리드미컬한 비트를 가지고 있지만 대단히 명징한 멜로디와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틱한 곡 전개로 본인의 (그리고 객원의) 장점을 극대화시켜주지요. 이런 노래를 데이비드 아츌레타라고 못 부를게 없잖아요. 그 지점에 비교적 가까이 닿아있는 곡이 'Touch My Hand' 입니다. 이 노래의 멜로디는 그렇게까지 명징하지 못하지만 다른 어색한 곡들보다는 훨씬 귀에 잘 들립니다. 초반에는 피아노와 비트만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시작되다가 마지막에 악기의 개수를 조금씩 늘려 질감을 점점 탄탄하게 하는 전개가 인상적입니다. 노래는 몇 개의 구절만 반복할 뿐이지만 기승전결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죠. 다소 과잉되게 프로듀싱되긴 했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청량한 비트 위에 얹혀진 아출레타의 청명한 목소리도 듣기 좋고요.

현 시류에 부응하기 위해 본인의 개성을 묻어둬야 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데이비드 아출레타의 가장 큰 재산은 목소리이고 당연히 그 점을 크게 부각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명징한 멜로디와 주류 음악 사이에는 분명히 더 모범적인 접점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 앨범은 어느쪽으로 갈까 결정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기만 하다가 끝이 나요. 이러한 고민이 생긴 것도 수긍이 갑니다. 아출레타는 <아메리칸 아이돌>내내 컨템포러리 한 곡을 부르지 못하는 노티나는 10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했고, 따라서 가수 고유의 장점도 살리면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앨범이 나왔어야 할테니까요. 하지만 이 앨범은 고민의 결과라기 보다는 고민 그 자체에 잠식당해 어쩔 줄 몰라하다가 답보 상태로 끝나고 만 것 처럼 보입니다. 다음 앨범에서는 부담감을 덜고 어느 쪽이던 노선을 확실하게 잡을 필요성이 보입니다. 더 잘 어울리는 쪽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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