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

[13 Jun 2003] 호칭 이야기

기원 2004. 6. 20. 16:03
과동기 게시판에 올렸던 글. ^^


작성자:박기원 번호:1337 조회수:95 작성일:2003-06-13 오후 11:17:12


제목 : 용진옹에 대한 나의 호칭변화기. ^^;


알다시피(모르는 사람도 많겠군) 난 19번, 용진(형)은 20번이다(학번). 광필이가 21번이던가? (이하 호칭생략. ^^)

아무튼 1학년 입학해서 들었던 물리학 및 실험, 화학 및 실험의 조는 학번순대로 짜여졌고, 19번과 20번은 실험단짝이 되었다. 더구나 세명이 한 조였던 화학실험은 21번이던 광필이로 추정되는 동기가 drop시켜서 둘이서만 하게되었고. 당근 제일 먼저 친하게 되었지. 지금은 폐허가 되버린 용진의 홈페이지에 내 홈페이지 링크의 소개란엔 '대학와서 젤 먼저 사귄 친굽니다'라고 되어 있었다.

당시 중후한(?) 멋과 향을 풍기는 용진에게 난 '형'이라고 불렀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날 중도에 처음으로 손 꼭 잡고 데려가서 서가의 은은한 향기에 취하게 만든 것도, 대출방법을 알려줬던 것도 용진이었다(사실 손은 안잡았다. ^^;). 대학 동기의 집 중 처음으로 가본 것도 용진의 집이었다. 그날 책장에 있던 '강대국의 흥망성쇠'라는 책은 아직도 내 뇌리에 박혀있다. (돌이켜 보니, 병수, 비오, 진섭, 동훈, 철민의 자취방과 채운, 준모, 철민의 하숙방 외에 '집'에 가본 곳은 그 외에 석이네 집 밖에 없네.)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있었던 2학기 첫 수업은 미적이었다. 그때 용진이가 내게 말했다. '앞으론 형이라 그러지 마.' 사실 나도 호칭에 대해 조금은 고민하고 있었다. '용진이형'이라는 호칭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재수한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가 문제였다. 그 뒤론 아예 '호칭'자체를 붙이는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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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나 99년 11월 25일, 적지 않은 나이에 입대했고, 훈련소에는 '어린것'들이 빠글빠글했다. 그곳에서 75년생(난76년생) 알동기(이하 A라 칭함)를 한명 만나게 되었고, 훈련소에서 난 83번 훈련병, 그는 84번 훈련병으로, 후반기교육을 받던 대구의 이수교에서 그는 5번, 난 6번으로 붙어 있었으며, 자대배치까지 같이 받아 육군본부 근무지원단 수송대대 1중대 1내무실에 같이 있게 되었다. (군생활을 해본 친구는 이 얼마나 끈질긴 인연인가를 알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서로 많은 힘이 되었고, 난 그를 '형'이라 칭했다. 사실 육군본부는 날라리 부대여서 '형'이라는 호칭이 많이 통용되는 부대였다. 더구나 부대가 부대인지라 나이가 많은 사람을 선호해서 그런 사람들만 많아서 더 그랬다. 그는 Boston Univ.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자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사실 부대에서 동기라는 것은 고참이 시키는 모든 일들 그 밖의 것들을 같이 하는 것이 당연한데,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신이 할 일을 내게 떠미는 듯한 인상을 주기 시작했고, 우리는 수평적 인간관계라고 생각하는 나와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고.

내가 일병을 달고도 3달이 지난 어느날, 부대에 신병이 들어왔다. 나보다 3살이 더 많은 사람이었고, University of Hawaii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하와이 리츠칼튼호텔에서 지배인을 하던 사람이었다(이하 B라 칭함). 사람이 참 좋아 보였고, 그 사람이 일병을 단 이후로 난 그를 '형'이라 칭했다. 그러나 그는 A와 달랐다. 언제나 엄격하게 깍듯이 내게 고참대접을 했다.

어느덧 난 전역을 했고(작년 1월), 그 뒤로도 B와 자주 전화통화를 했는데, 내가 전역한 후임에도 불구하고 B는 깎듯이 고참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말을 놓으라고 그렇게 말해도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그도 작년 7월 전역을 했고, 지난 4월 결혼을 했다. 결혼식장에서도 그는 내게 높임말을 썼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서야 내게 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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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칭이라는 것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참 많은 문제가 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더 좋은 인연을 맺게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문제는 처음 사람을 소개받았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가를 쉽게 알 수 없다는 것이지.

용진은 B라는 사람과 같이 '형'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난 다시 그를 '형'이라 칭했다. 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도 했고. (내가 '형'이라 칭하지 않은 다른 친구들은 자격이 없다는 게 절대 아니다. ^^;)

아~, 앞으로는 뭐라고 불러야 하나. 지용이 말대로 용진옹이라고 해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