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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Jul 2001] 부조니(Busoni)의 바흐 샤콘느 피아노 편곡.

기원 2004. 6. 3. 13:33
어제 오후 1시경, KBS 1FM 'KBS음악실'방송을 들었다. 연주되는 곡은 약 한달 전에 들었던 곡, '바흐(Bach)의 Violin partita No.2 Chaconne'의 피아노 편곡이었다(6월 8일에 올린 라울 소사의 연주감상 참조).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난 번에 들었던 라울 소사의 연주는 '브람스(Brahms)'에 의한 '왼손을 위한 편곡'이었고, 어제 들은 연주는 유명한 바흐곡 편곡자인 '부조니(Ferruccio Busoni)'에 의한 양손을 위한 편곡이라는 점.

부조니는 자신이 직접 작곡도 했지만, 그보다는 바흐의 훌륭한 곡들의 피아노 편곡으로 유명한 음악가이다. 음악에 한창 빠져있을 때였던 4년여 전인 대학 3학년 시절(97년), 부조니의 이 편곡을 들어보려 무지 노력했지만 이상하게도 연이 닿지 못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해 무척 아쉬워 했었다.

하지만... 라울 소사의 연주를 너무나도 감명깊게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던 것일까. 연주가 끝난 뒤에 몰려오던 아쉬움.

바이올린 특유의 음색은 길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레가토와 현과 활의 마찰에 의한 파열음이다. 근본적으로 음이 길게 이어지지 못하는 타악기인 피아노로 이런 바이올린의 음색을 표현하는 것은 원시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 그래서인지 부조니는 바이올린의 음색을 모방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재창작을 시도했다. 하지만 난 바이올린으로 연주되는 샤콘느에 너무 절어버려서인지 오히려 감흥이 떨어져 버렸다.
좌로부터, 부조니(Ferrucio Busoni)와 브람스(Johannes Brahms).

그렇다면 왜 라울소사의 연주에는 그토록 감동을 받았던가?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연주를 들었을 때 그 편곡이 브람스에 의한 것이 아닌, 부조니에 의한 것인 줄 알고 있었다. 지금껏 그렇게 알고 있다가, 어제 연주를 들으면서 '엇, 이건 한손으로 연주하는 게 아닌데?'하고 생각했고, 알아보니 라울의 연주는 브람스가 편곡한 것이었다.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사실 음악감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익숙함이다. 나중에 자세한 글을 다시 올리겠지만, 바흐의 'Solo violin sonata and partita'의 가장 유명한 연주 중 하나는 '헨릭 셰링(Henryk Szeryng)'의 연주이다. 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연주는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연주였고, 이 두 연주는 정말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크레머의 연주에 길들여졌던 난, 셰링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느끼한 그의 연주에 참지 못하고 끝까지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연주에 길들여진 후에 다시 크레머의 연주를 들었을 때는, '아니, 이게 정말 내가 그토록 좋아하던 크레머의 연주였단 말인가!'하고 무미 건조한 그의 연주에 크게 실망했었다.

이번에도 그래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곰곰 생각해봐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바이올린은 EADG(미라레솔)의 네 현으로 되어 있고, 한번의 보잉(한번 활을 긋는 것)으로 두현까지만 진동시킬 수 있다(이것을 더블 스토핑이라 한다.). 따라서 세 리듬 이상을 동시에 진행시키려면 필연적으로 더블스토핑기법을 무수히 사용하면서 현 위를 움직여야만 한다. 세 음을 동시에 낼 수 없으니까 한 현을 진동시키고 곧바로 다른 두현을 더블스토핑 기법으로 진동시켜야 하고, 그 결과 바흐의 샤콘느를 들어보면 당김음 같은 연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브람스의 편곡은, 이러한 연주를 그대로 피아노에도 적용했다. 즉 한번에 세 화음을 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처럼(한 음과 곧이은 나머지 두 음)연주하게 한 것이다.

부조니의 편곡은 절정에 도달해 가는 후반부에서는 브람스와 마찬가지 기법을 사용했지만 정적인 초반에는 조용히 세 음을 동시에 연주하도록 했다. 후반부의 좀더 극적인 상승의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오히려 어색하게만 들렸다. 더구나 바흐의 샤콘느는, 각기 다른 세 리듬이 개별적으로(물론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진행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 세 리듬을 피아노로 화음으로 한번에 처리하면 불협화음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불협화음이 오히려 초반의 그러한 정적을 깨버렸다. (설마, 내가 잘못들은 것은 아니겠지.. ^^) 그리고 좀 더 웅장하게 보이려고 원곡 보다 화려하게 처리한 경우가 많았는데, 오히려 그런 장식음들이 더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사실 샤콘느의 피아노 편곡으로 더 유명하고 빈번히 연주되는 것은 브람스의 것보다는 부조니의 것이다. 그러나 라울 소사의 아름다운 정신, 아름다운 모습때문에 너무 감동을 받어버려선지도 모르겠지만, 부조니의 곡보다는 브람스의 곡이 훨씬 더 내 마음을 깊게 울려버렸다.